"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요." ... 3개월 만의 에세이
오늘은 주현이가 다시 근 3개월 만에 다시 학교에 가는 날이다. 주 3일 가게 되었다. 2.5단계가 되면 다시 주 1일이다. 언제 어떻게 나의 루틴이 또 바뀔지 모르는 이 시기에, 아이의 개학날 다른 여성 예술가들은 어떻게 일상을 보냈는지 살펴본 책 『예술하는 습관』을 한번 빠르게 쭉 한번 읽어보았다. '여성' 예술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불편하지만 어쩔 수가 없다. 여전히 '예술가'라고 하면 남성을 떠올리는 것이 대다수니까. 아래에서는 '예술가, 작가'로 지칭하겠다. 아래의 글에 등장하는 예술가와 작가는 모두 '여성'이다.
한 예술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작업하는 것을 이렇게 비유했다.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큰 성취를 남긴 여성들은 예술가와 결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거나 아이를 갖지 않았다. 혹 아이가 있더라도 아이를 보살피는데 그렇게 큰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다. 어떤 작가의 딸은 심지어 작가인 엄마 밑에서 자라는 것이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았다'라는 말까지 남긴 것을 보고 뭔지 알것 같은 느낌에 잠시 등골이 오싹했다.
작가마다 많이 다른 것은 맞지만 공통적인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찾았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의 에너지양은 다르다는 것을 갈수록 확실히 알게 된다. 나의 에너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내가 취할 수 있는 방식을 계속 찾아 나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여성) 작가의 삶인것 같다.
나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게 되었다. '되었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어떤 선택이든 개인의 선택이 100% 그만의 책임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선택은 개인의 기질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사회, 주변관계 이 모든 것으로부터 막대한 영향을 받는다. 이런 영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느냐가 개인이 가진 자율의 정도인 것이다. 그 자율은 경제력, 성별, 신체 조건에 따라 모두 다르다. 나는 내 주어진 조건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뿐이었다.
전업 엄마, 작가 그리고 집관리자로서(중요도순; full time mom, author and house maker)로서 나는 이제 40이라는 나이대에 진입했다. 30대 중반에는 의욕과 욕심이 모두 넘쳐서 앞으로 10년 20년 막 달려도 일년에 한 두권 계속 만들어봐야 열권, 많으면 이십권 남짓이군 하면서 초조해했다. 안타까운 나머지 여든까지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몸이 튼튼해야 한다며 오래 일할 목적으로서 몸을 관리하려고 했다. 아이가 내 작업 시간을 앗아가는 것에 힘들어했고, 집안일이 성가시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두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더이상 그런 태도로는 작가로서 삶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보살피고 사랑할 수 있어야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살피는 방법으로서 심리상담, 명상과 요가, 식물과 함께 하는 시간이 쌓이면서 나의 생각과 태도도 조금씩 변해갔다.
더 이상 열권 이십권이라는 성취에 집착하지 않는다. 백세시대이니 팔십까지 일하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아무리 의학이 발달했다 해도 평균적으로 75세 정도가 되면 사회적 기능은 거의 마감할 시기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 역시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으면 행운으로 여겨야하고 사실상 그 이후로 삶을 마감하게 된다면 그를 애석해 해서는 안될 나이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죽음을 준비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느낀다. 비록 내 에너지와 시간이 모두 최고조에 이르렀던 시간을 크게 열정을 가지지 못했던 일로 모두 보내버렸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하지만 누굴 원망하거나 날 미워할 필요는 없다. 사람마다 그저 주어진 삶이 다른 것이니까. 내게 주어진 그 시간을 난 항상 충실히 보냈다. 이렇게 여러 만들어진 요인과 우연의 결과 '주현'이라는 엄청난 사람이 내 삶에 등장했고 이 사건은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나에게 '육월식'이라는 새 이름을 안겨준 것도 내 아이다. 어쩌면 큰 행운이었다. 지금의 내가 사랑하는 아이에게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제는 남은 시간을 꾸준히, 그리고 전보다는 덜 불안해 하면서, 매일을 충실히 살아갈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말로, 잘 죽을 수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운이 좋아서 처음 만든 두 권의 책이 사람들에게 소개될 기회도 왔다. 다음 책을 더 잘만들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슬쩍 올라오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내게 계속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더 중요한 일은 조금 늦었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었다는데 만족하는 것이다.
그리는 일, 읽고 쓰는 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내게 결국 왔으니까.
불만족한 나를 만족하는 법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니까.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익숙해지고 있으니까.
그러니까 괜찮다,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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